건강관련보도자료

[스크랩] 한겨레 컬럼) 해관의 다섯 가지 맛과 어른의 조건

수균정 2015. 2. 17. 09:52


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선생에게 인체와 자연, 자연과 사회, 민족과 국가는 둘이 아니다. 하나의 유기체로서 인체 자연 사회가 유기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우리 몸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병은 역천(逆天)하기에 생기는 것, 순천(順天)만이 나라와 개인의 건강을 되찾게 한다.” 

금수목화토 오행과 청황적백흑 오색, 산함신감고 오미가 조화된 밥상이야말로 건강의 으뜸이다. 그래야 성정 또한 바르고 뚜렷하다. 불의에는 맵고, 무원칙에는 쓰고, 약한 것에는 달고, 강한 것에는 시고, 기름진 것에는 짜다. 선생이 그렇다.

“예수께서 선생을 만나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저기 오는 저 사람은 참한국인이다. 마음이 순진무구하구나.’”(신학자 이정배 감신대 교수) 이 교수에게 해관 장두석 선생의 분노는 의롭고, ‘거룩’했다. 암도 스님(전 백양사 주지)은 ‘해인(불가의 근본진리)을 마음으로 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선생이지만 처음 대면하면 대개 기겁한다. ‘제국주의가 이 나라를 망하게 하고 민초들을 병들게 하고, 민족정신과 문화를 망하게 하고….’ 다짜고짜 제국주의 비판을 쏟아낸다. ‘좌빨’? 하지만 선생은 정효자 기념사업을 주도한 동복향교 장의였고, 배달문화선양회 대표로 해마다 천제를 올리며, 호주제 폐지 반대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러면 ‘수꼴’? 선생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역대 독재정권에서 체포, 투옥을 거른 적이 없다.

선생에게 좌·우, 혹은 진보·보수는 무의미하다. 민족이 건강해야 국가가 건강하고 국가가 건강해야 민중이 건강하다는 신념에 따를 뿐이다. 인체와 자연, 자연과 사회, 민족과 국가는 둘이 아니다. 하나의 유기체로서 인체 자연 사회가 유기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우리 몸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병은 역천(逆天)하기에 생기는 것, 순천(順天)만이 나라와 개인의 건강을 되찾게 한다.”

순천의 요체는 민족의 식의주 생활을 잘 살려 잘 먹고 잘 싸는 것. 나쁜 음식 먹고 배설을 제대로 못해 체내에 찌꺼기가 쌓이고, 쌓인 찌꺼기가 썩어서 독소를 내고 온몸에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 만병의 근본이다. 5가지 잡곡과 오신채 식단으로 찌꺼기를 줄이고, 짜게 먹어 썩거나 염증이 생기는 걸 막고, 맵게 먹어 기혈이 잘 돌도록 하고, 물을 많이 마셔 찌꺼기를 배출하게 해야 한다. 금수목화토(金水木火土) 오행과 청황적백흑(靑黃赤白黑) 오색, 산함신감고(酸鹹辛甘苦) 오미가 조화된 밥상이야말로 건강의 으뜸이다. 그래야 성정 또한 바르고 뚜렷하다. 불의에는 맵고, 무원칙에는 쓰고, 약한 것에는 달고, 강한 것에는 시고, 기름진 것에는 짜다. 선생이 그렇다.

맵다

매운맛은 기혈을 순환시키고, 몸 안 독소를 내보낸다. 선생은 걸어온 길 자체가 고초, 당초보다 더 매웠다. 학력은 초등학교 2년이 고작. 그때 책들을 불태운 뒤 ‘이 더러운 일본 놈 학교 다니지 말자’며 자퇴했다. 6·25전쟁 전 마을 청년 8명이 서북청년단에 총살당하는 걸 보고는 전쟁이 나자 소년 빨치산이 되어 산으로 올라갔다. 그때 얻은 폐수종과 간장질환으로 죽음이 지척이었다. 먹거리라곤 소금만 들고 옹성산 옹성사 토굴로 들어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다산의 ‘민간요법’과 의약서 ‘약성가’도 뀄지만, 그가 그때 체득한 것은 자연치료의 이치였다. 안 먹으면 낫고, 똥 잘 싸면 무병하다. 탐욕과 미움이 없어야 건강하다.

이승만 시절 진보당원으로 활동했고, 3·15 부정선거 때 고향 전남 화순군 이서면 지서에서 난리를 치다가 체포됐다. 5·16 쿠데타와 함께 수배자로 쫓겨 다녔다. 1974년 유신 땐 민주회복국민회의에 참여하고, 1976년 가톨릭농민회에서 농민운동을 시작했고, 1979년엔 명동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사건, 광주와이더블유시에이 사건으로 체포됐다. 1980년 5·18항쟁 땐 내란죄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5·18항쟁 때 보안사에서 “나라를 전복하고 살인을 한 것은 너희들이지 광주 시민이 아니”라고 맞서다가 정강이뼈가 으스러지는 고문을 당했고, 재판 최후진술에서는 “이 재판은 내가 받을 게 아니라 개두환이 받아야 한다”고 호통쳤다. 그런 ‘불호령’은 지금도 다름없다.

쓰다

쓴맛은 기열을 배출해 몸속의 염증을 억제하고 몸 안의 습을 말린다. 막힌 기를 뚫는다. 이 나라는 허리가 잘리면서 기가 막혀버렸다. 원흉은 제국주의. 제국주의는 나라만 동강 낸 게 아니라, 생로병사 모든 과정을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출산의 상업화는 그 상징. 의료자본은 자연분만을 없앴다. 강제분만을 위해 척추 마비주사를 놔, 아기가 스스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옥시토신 분비를 봉쇄한다. 유도분만이라지만 아기는 강제로 끌려나온다. 산모의 자궁경부가 온전할 수 없으며, 태아가 건강할 수도 없다. 아기는 50시간 정도 굶어야 배내똥을 모두 눈다. 그래서 엄마도 그만큼 젖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소젖을 먹이니, 아기는 평생 똥을 몸 안에 담고 산다. 당뇨 등 온갖 질병의 원인이 된다.

제국주의적 식의주, 사고방식에 대한 쓴소리가 저주에 가까운 건 그런 까닭이다. ‘대학물 먹으면 버린다. 공부를 할수록 불한당, 거지가 된다.’ ‘주부가 대학을 나오면 가정이 죽는다.’

시다

선생의 반찬은 감식초와 군소금만으로 버무리면 끝. 식초는 나쁜 균을 없애 부패를 막고, 발효를 증진시킨다. 신맛은 몸 안 진액이 빠져나가는 걸 막는다.

거의 마지막으로 민족생활관을 찾아온 이들에게 선생은 이렇게 요구한다. “생사의 주체는 바로 당신들이니 스스로 목숨 걸고 결단해야 한다.” “병은 스스로 다스려야지 다른 사람이 치료해줄 순 없다.” 충고는 시큼하다. “장독대를 살려라. 장독대를 없애 가족이 병들었다.” 면역력은 몸속 발효균이 얼마나 왕성한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발효의 원천이 장독대다. 그러나 장독대 있는 집이 어디 있나. “요즘 여성 모두가 삼각팬티 입는데, 꼭 조이는 팬티는 자궁이 숨 쉬는 걸 막아 자궁을 병들게 한다. 배꼽에 걸쳐야 할 허리띠를 골반에 걸쳐 자궁을 옥죈다. 브래지어로는 유방을 압박하니 몸이 건강할 수 없다.”

짜다

짠맛은 뭉친 것을 풀어준다. 변을 부드럽게 해주며, 담을 없애준다. 염증은 억제하고 발효 혹은 소화를 촉진한다. 물을 많이 섭취하게 해 체내 찌꺼기 배설을 돕는다. 저염식은 제국주의자들이 강요한 대표적인 식습관이라고 선생은 확신한다.

가톨릭농민회와 함께했던 농민운동, 서민의 삶을 부축하는 신용협동조합 운동, 지식인 학생들의 구심점 노릇을 했던 양서조합, 민초들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민족생활의학 운동 등 선생이 걸어온 자취는 하나하나가 소금 구실을 했다. 1960년대 광주·전남지역에 신협운동의 씨를 뿌려 밀알신협, 와이더블유시에이신협, 와이엠시에이(YMCA)신협, 삼애신협, 계림신협 등을 탄생시켰고, 1970년대 농민운동의 금자탑이었던 함평 고구마 투쟁에도 앞장섰다.

민족생활의학 운동은 1975년 세운 자연건강대학 설립과 함께 본격화해, 1989년 민족생활학교로 개편을 거쳐 지금까지 정규과정 이수자만도 4만명에 이른다. 1999년엔 사단법인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를 세웠고, 전국에 민족생활관 24곳을 운영하며, 스스로 병을 다스리는 법을 전파한다. 그는 1994년 월간 <신동아>가 꼽은 ‘생활을 통한 국내 명의사 7인’에 선정됐다.

달다

‘풍류에 달통’(시인 김준태)했다. 신명이 오르면 장구를 두드리며 진도아리랑과 양산도를 열창하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천지인 합일에서 나오는 것이 신명, 신명의 드러남이 춤. 그런 선생을 두고 김준태 시인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샤먼’이라고 했다. 그가 주관하는 자리는 맵고 쓰고 짜지만, 결국 달다. 단맛은 몸 안의 여러 기능을 조화롭고 평안하게 한다.

담소하던 선생에게 한 여인이 다가와 큰절을 한다. 매무새가 어찌나 정갈하고 지극한지 큰절 한 번 하는 데 2~3분이나 흐른 것 같다. ‘선생님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러시오. 몸 잘 다스리시고….’ 보름 전 실려 오다시피 했다가 돌아가는 여인이라고 한다. 눈짓으로 배웅하고는 마주한 이에게 술잔을 권한다. “병이란 건 없어. 제가 만든 것이니 제가 스스로 다스리면 돼.”

곽병찬 대기자

어른. 때론 불호령이 매섭고, 쓰고 짜며 감싸안는 품이 따듯한 사람. 노년을 비루하고 처량한 난폭자로 만드는 탐욕스런 도시 비열한 거리에서 더욱 그리워진다. 박몽구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의 얼굴에는 늘 젊은 느티나무 한 그루 겹칩니다…. 온 세상이 아무리 흔들린다 해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깊게 뿌리내린 느티나무.” 시대의 당산목이다. 그 나무는 멀리 화순군 이서면 인계리 무등산 자락(양현당)에 있지만, 그늘은 남북 삼천리에 걸쳤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출처 : 장두석의 생명살림
글쓴이 : 솔방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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